[돋보기]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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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윤자호 0 934 2023.02.06 09:00

[돋보기]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작성: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왜 노동계급이 트럼프에게 표를 줬을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저를 포함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품었던 의문입니다. 사실, “왜 노동계급이, 취약계층이 ○○○에게 표를 줄까?”는 유서가 깊은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해석을 보다가 “아무튼 뭘 잘못 알고 있어서 그렇다”는, 다소 퉁명스러운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겠지만요.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위 질문에 대한 해답 중 하나를 세심하고 정중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연구 결과입니다. 무연탄 산업과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번성했던 미국 동부 ‘콜브룩’이라는 가상의 도시에는 약 3천여 명의 주민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들은 크게 선주민과 이주민으로 구분됩니다. 가난한 노동계급인 선주민과, 저렴한 주거비로 인해 콜브룩으로 이주해온 이민자들입니다. 


이러한 ‘콜브룩’의 공간적 배경은 그 자체만으로 왜 미국에서 반 이민 정책이 득세하게 되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줍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실현할 수 없게 되고, 열악한 일자리와 불안정한 주거 환경으로 인해 고통받고 분노한 사람들의 시야에 ‘이민자’라는 낯선 존재가 들어올 때의 생경함과 적개심 같은 것들을 말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노동 계급이(각자의 분노와 상처를 안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지거나 자신들의 억울함을 해소해줄 억만장자 기업인을 지지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합리적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책의 원제인 『WE’RE STILL HERE: Pain and politics in the heart of America』에서 유추할 수 있듯, 실바는 자신에게 기꺼이 집 문을 열어준, 쇠락한 탄광촌 주민들의 상처와 감정이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실바와 이야기를 나눈 콜브룩의 주민들은 대부분 가족 문제, 마약, 폭력, 성폭력,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위험과 적개심이 가득한 생활 세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적 대안을 상상할 여지는 아주 적습니다. 


실바가 보여주는 콜브룩의 광경은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안정적인 삶은 상상하기도 힘들며, 구조적 해결책이 잡히지 않아 각자 도생으로 파편화되고 급진주의와 냉소, 음모론이 공동체가 있던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냥 다들 뭘 몰라서 그래”라고 하며 눈을 감아버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독자에게 냉소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끈기와 희망을 보여줍니다. 상대방이 왜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관을 형성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구조에 대한 이해로, 구조에 대한 이해는 대안을 상상할 수 있는 힘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공통의 고통을 중심으로 구축된 친밀감이, 더 넓은 공동체를 연결하는 가교로 기능해 관계성과 회복력을 복원할 수 있는(p. 311)” 가능성 같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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