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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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몰골

노광표 4,552 2016.10.14 02:05
 
2016년 노동쟁의가 시간이 갈수록 수그러들기는커녕 확대되는 양상이다. 철도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파업이 시작된 지 벌써 보름이 되었고, 화물연대도 1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의 교섭도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는 등 혼란을 겪으며 12일에야 2차 합의안이 나왔다.
 
노동쟁의의 확산 및 격화는 노동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9월까지 근로손실일수는 105만9000일로, 지난해의 2배를 크게 웃돌고 최근 10년 평균 62만일보다도 훨씬 높다. 공공부문 노조들과 현대차 등 금속노조들의 파업이 지속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 근로손실일수는 2000년의 최고치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근로손실일수가 많다는 것은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가 많고 참여 기간도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업이 빈발하고 그 규모가 확대된 이유는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과 정부의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파업이 확산되면서 노조의 투쟁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연일 신문과 방송들은 노조의 파업을 ‘귀족노조’의 투쟁이라 맹비난하고 있으며, 정부도 긴급조정권을 들먹이면서 파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중단을 요구하였다. 박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을 볼모로 제 몸만 챙기는 기득권 노조의 퇴행적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불법행위에 적극 대응해주기를 바란다”고 함으로써 파업에 대한 적대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정부의 엄단 방침과 사측의 직위해제와 해고, 무노동무임금에 따른 금전적 불이익에도 파업이 계속 확대되고 격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말처럼 보수정권 8년의 노동 배제의 친기업 정책은 노동계의 전면 저항인 파업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노총도 대화가 아닌 길거리 투쟁에 나서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정부는 ‘귀족노조, 시민 불편’을 이유로 파업의 정당성을 부정하지만 노동자들도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며 배수진을 친 형국이다. 노동계의 벼랑 끝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고용불안, 임금감소, 비정규직 확대의 건너편에는 불평등의 심화, 재벌체제의 공고화, 자본 독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예전에는 파업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일반 시민들의 태도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신들의 권리를 위해 불편함을 참겠다’는 변화된 인식들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파업은 노사 당사자들의 문제이지만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적인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철도 등 공공부문의 진짜 주인은 대리인인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파업의 불편을 참는 소극적인 행동에서 한발 나아가 파업의 목적과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해법 모색이 절실하다.
 
파업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다. 첫째, 노동현장에는 절망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보수정부 8년 동안 추진 된 친재벌 정책은 노동자들의 절망과 분노의 원인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5년 69.6%에서 2013년 64.3%로 5.3%포인트 감소했으나, 기업은 오히려 부유해졌다. 1996년 국민총소득(GNI) 중 기업소득의 비중은 15.7%였으나, 2015년에는 24.6%로 8.9%포인트 수직 상승했다. 가계소득의 줄어든 자리를 기업이 차지한 것이다. 가계부채는 1300조원으로 끝없이 늘고 있지만, 거꾸로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550조로 급증하였다. 노동유연화 정책은 해고의 남발로, 연공형 임금체계 해소는 성과연봉제로 둔갑하여 임금 불안정성만 높이고 있다.
 
둘째, 노조의 기능 및 역할 논란이다. 노조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대기업 및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 조직에 안주해 있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노조의 이기적 행태는 도덕적인 비난으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3%로 낮을 뿐 아니라 노조의 대다수는 기업별 노조이다. 노조가 전체 노동자의 이해 대변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산별교섭을 보장하고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공권력에 의존한 대증 요법으로는 노동쟁의를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 있다. 늦더라도 산업현장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는 근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계에 대한 거센 비난이 아니다. 미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고통 전담만을 강요하는 무능한 정권, 정부 뒤에 숨어 자기 배만 생각하고 국민의 밥그릇을 걷어차 버린 자본에 대한 심판이다.
 
*이 칼럼은 10월 13일자 뉴스토마토 시론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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