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혁명가 이재유가 던지는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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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혁명가 이재유가 던지는 물음들

4,604 2019.12.09 09:00
작성자: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우리 민족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둡고 괴로운 시기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특히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가 그러했다. 이 시기에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바탕으로 민족의 자주 독립과 노동 해방을 위해 투쟁한 ‘당대 최고의 혁명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재유이다. 
 
 그의 일생과 투쟁사는 널리 잘 알려져 있지를 않다. 어떤 사람은 체 게바라는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동경의 대상되고 있는데 반해 체 게바라 보다 더 인간적이고 헌신적이며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이재유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개탄한다.  
 
 이재유는 함경북도 삼수 출신으로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송도고등보통학교, 그리고 일본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학비 때문에 그만두었거나 반일운동 때문에 졸업을 못하였다. 이재유가 주도한 혁명적 노동운동은 경성트로이카운동 시기와 경성재건그룹운동 시기, 그리고 조선공산당재건준비그룹운동 시기를 거치면서 전개되었다. 
 
 경성트로이카운동은 1933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트로이카운동은 마치 세 마리의 말이 자유롭게 마차를 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운동자가 자유로이 선전하고 투쟁을 전개하는 운동방식을 말한다. 개별 운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부문은 계통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이런 운동방식은 당시 지배적인 조직 방식이었던 중앙 집중의 하향식 조직체계와는 대조적이었다. 경성트로이카는 비합법 상태에서도 산업별 조직형태를 지향했다.   
 
 경성재건그룹운동 시기는 이재유가 경성 서대문 경찰서에서 탈출하여 경성제국대학 미야케 시시카노스케 교수 집에 숨어 있다가 나와 경성재건그룹을 조직한 1934년 시기이다. 경성재건그룹은 1934년 12월에 이재유를 비롯하여 이관술과 박영출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 경성재건그룹은 운동 방침의 수립과 운동가의 획득을 위해 활동을 벌이는 한편, ‘자기비판문’, ‘통일문제’, ‘학교내의 활동기준’ 등의 팜프렛을 간행했다. 경성재건그룹운동은 당 재건을 목표로 설정하면서 경성트로이카운동 목적은 그대로 계승하였다.  
 
 조선공산당재건준비그룹운동 시기는 1936년 경성재건그룹과 경성트로이카가 통합한 가운데 조선공산당재건경성준비그룹이 형성되었다. 경성준비그룹은 출판활동과 《적기》발행을 행하였으며, 운동 노선과 당면 임무를 설정하였다. 이재유는 조선의 경제적 관계들이 반(半)봉건적, 반(半)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하고, 조선 혁명의 성격을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으로 설정했다. 이런 민족혁명은 민족부르주아지가 모두 반동화되었기 때문에 혁명적 투쟁력을 지니고 있는 노동자계급이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유는 트로이카운동과 당 재건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1936년 12월 25일 검거되었다. 그리하여 이재유는 1944년 10월 26일 감옥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혁명가로서 일생을 마감하였다. 
 
 이재유가 원칙적이고도 창의적인 활동을 전개했던 일제 시기의 상황과 오늘날의 우리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재유는 우리들에게 교훈과 다름없는 무거운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오늘날의 노동운동가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이 노동자 대중과 인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열성을 다해 활동하고 있는가 
 
  노동운동가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이 민족문제와 계급문제의 관계 설정을 정확히 하고 이를 통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노동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노동현장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노동자들과 인민의 조직적 토대를 구축하고 민중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지도 조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가
 
  노동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미래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술적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는가
 
  노동운동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이론과 실천을 통일하고 그 차원을 높이기 위해 열성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노동운동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은 이런 물음들에 대한 응답을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변혁을 위한 과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안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공간에 있는 고 조월희 작가의 이재유 석고 흉상이 이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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