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2014 노동절-재해공화국의 비극에 잠기다/이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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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2014 노동절-재해공화국의 비극에 잠기다/이원보

구도희 8,360 2014.04.28 10:03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leewbb@daum.net)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누가 말했던가, 날은 화사하기만 한데 세상은 온통 서글픔과 어두움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진도 앞 바다 세월호의 참극으로 엄습해온 공황상태의 결과다. 무엇 때문인가? 수백 명의 삶을 순식간에 진도 앞 깊고 추운 바닷속 갯벌에 몰아넣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미안함과 자괴감의 형극으로 옥죄어 버린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검찰, 경찰 등 권력자들과 관련 당국자들이 앞을 다투어 조속한 구조와 책임자 엄벌을 외치고 있지만 혼란과 난맥상은 거듭되었다. 유족들의 슬픔과 초조함은 갈수록 더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참담한 뜨거운 분노가 심장에 치밀고 올라오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숨겨진 내용들이 벗겨지고 유족과 피해자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과 위로의 물결이 전국 곳곳을 스며들고 있는데도, 권력자들은 당장의 사태수습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근본적인 해결책 강구는 뒷전이었다. 견디다 못해 터져나오는 원성과 비난에 책임 회피나 여론 무마에 집착하는 모습들은 차라리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10여 명의 꽃다운 젊음을 희생시킨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건이 엊그제 같고, 산업재해 사고가 매일같이 이어짐에도 때만 지나면 쉽게 잊혀지는 국민적 건망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기가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은 아닌 듯 했다.   
 
세월호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장이나 선원들의 책임이 크다. 무엇보다 수많은 승객들, 어린 학생들을 팽개치고 먼저 도망쳐 나온 일은 어떻게 봐도 용서받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 이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과 배경에 대한 지적은 드물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승객과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낡은 배를 멋대로 고치고, 선장 이하 선원 전부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을 관리해야 할 기관은 해양수산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차고 앉아 숱한 문제투성이들을 눈감아 줌으로써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거기에 관통하는 원리는 비용 감축과 효율성 증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와 이윤증대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한 원리로서 정부의 ‘암덩어리 같은 규제’의 완화 정책이 탄탄하게 뒤를 받쳐주고 부정부패의 고리가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관리가 엉망인 나라라 해도, 또 다소 엉성하다고 해도 관련 규정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경제성장주의에 매몰된 정치적·경제적 지배권력자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4대강 깊은 물속에 국민세금 수백조 원을 쏟아부을 수는 있어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고를 예방하거나 재해전문가를 키우는데는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결과이다. 어디 그 뿐인가, 대선개입과 간첩조작이 분명한데도 법률, 규정은 무시한 채 권력자의 자의대로 해석하고 운용하는 정치상황에서 작은 규칙이나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은 설 자리를 잃은지 오래다. 이것이 ‘위대한 영도자’의 지도를 받는 자본주의 철학 아래 50년간 압축성장으로 이룩된 10대 경제강국의 현주소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이라는 이름의 ‘사람’을 모든 가치의 한 중심에 두어야 할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과 삶 자체를 제물삼아 제 배만 불리는, 구석구석 썩어 악취가 진동하는 재해공화국의 압축판을 역역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잔인한 4월을 보내면 바로 5월 1일 노동절이다. 온 세계의 노동자들이 이날 하루만이라도 일손을 놓고 가족, 친지들과 마주하여 즐기는 날이다. 1886년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던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리며, 오늘 우리 현실을 반추하고 내일을 향한 전진을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하인 1923년 조선노동총동맹이 최초로 노동절 행사를 치룬 이래 단절과 굴절과 왜곡을 거듭하며 70여 년을 거쳐 1994년 되찾은 노동자의 명절이다. 즐거울 일이 별로 없는 여러 가지 상황 변화 속에서 억지 축제라도 해서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그 자리에 세월호의 비탄이 들어앉았다. 조그만 축제마저 물리고 조용하고 근엄한 조문행사로 갈음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한국노총은 종래의 마라톤대회를 결의대회로 바꾸는 큰 결단마저 접어버리고 행사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무엇 때문인가? 비탄과 눈물이 온 나라를 휘돌고 있는 이 난리통에 무슨 축제냐는 조직 안팎의 질타가 두려운 탓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노동계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음에도 노동계는 조용히 넘기려는 모습이다. 거기에는 노동계 스스로 재해공화국을 야기한 한 요소라는 자기 반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처럼 세계 제일의 산재발생국이다.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4년 이후 8만 5,500여 명이 죽었고, 부상자는 420만 명에 가깝다. 민주화가 진전되었다는 1990년대 이후에도 사망자는 매년 2,000명을 훌쩍 넘었고 2012년과 2013년에 2,000명 아래로 겨우 내려왔다. 작년만 해도 재해자 수는 91,824명, 사망자 수는 1,929명이었다. 하루에 5명 넘어 목숨을 잃고 251여 명이 다친 것이다. 
물론 세월호의 죽음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숫자로 치면 산재 노동자는 세월호 희생자보다 몇 배나 많다. 한 해에 한 대기업 노동자 전체가 사라져 버리는 재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성장 신화의 엄호 아래 제대로 된 예방조치와 시설을 갖추지 않은 채로 생산성 향상을 통한 이윤 증대의 아성에 노동자들을 몰아세운 데 있다. 이 역시 자본의 탐욕과 이를 방조한 권력의 만행으로 인한 인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재해에 대해 노동운동이 전적으로 자유로운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곧 노동운동이 한 해 수천, 수만 명의 죽음과 부상, 질병에 대해 결연히 맞서지 않음으로써, 이윤을 위해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차없이 버리는 의식과 관행이 알게 모르게 일상화되고 끝내는 재해불감증으로 이어지도록 용인해오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이는 만일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면 모든 것을 비용과 이윤 개념으로만 계산하려는 가진 자들의 횡포와 만행 그리고 이들을 옹호한 권력의 오만을 상당한 정도로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생명 감각의 마비상태로 인한 재해공화국의 참상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자기성찰을 요구한다. 노동절은 지난 날을 정리하고 내일을 향한 희망을 설계하는 날이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가지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 간 세월호의 영령들과 경제강국의 그늘 아래 스러져간 산업재해의 희생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노동운동은 겸허한 진단과 함께 사람의 생명과 삶이 무엇보다 존중되는 사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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