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차 ILO 총회 무엇을 다뤘나

노동사회

103차 ILO 총회 무엇을 다뤘나

구도희 0 4,517 2014.07.08 04:03
 
국제노동기구(ILO)는 매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총회를 개최하여 국제노동기준을 수립하고 각 회원국의 국제노동기준 준수 여부를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또 주요 노동‧사회 현안을 토론하기도 한다. 예산과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이사회를 선출하는 것도 총회의 권한이다. 지난 5월28일~6월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103차 총회에서는 한국 정부의 비준협약 불이행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03차 총회는 무엇을 논의했나
3주간 열리는 총회는 크게 본회의와 주제별 위원회로 이루어진다. 본회의는 ILO의 활동방향을 제시하는 <사무총장 보고서>에 대해 각국 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과 각 주제별 위원회의 논의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채택하는 역할을 한다. 본회의 토론을 위해 올해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은 보고서를 통해 ‘공정한 이주’를 실현하기 위한 ILO의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주제별 위원회는 4개의 위원회가 설치되는데, 회원국의 국제노동기준 준수 여부를 심의하는 기준적용위원회(Committee of Application of Standards)는 매 총회마다 상설적으로 설치된다. 이 밖에도 새로운 국제 기준을 수립하거나 노동에 관해 매년 정세적으로 중요한 쟁점에 대해 일반적인 토론을 진행하는 위원회가 설치된다. 
올해는 강제노동위원회, 비공식부문위원회, 고용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강제노동위원회는 ILO 협약 29호(강제노동 협약)를 보충하는 의정서(Protocol)의 조항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협약 29호는 1930년에 채택된 것이어서 최근 새롭게 대두되는 형태의 강제노동을 다루는데 효과적이지 않다. 의정서는 노동력 이주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이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강제노동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방안을 담았다. 비공식부문위원회는 비공식부문을 공식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과제를 제시하는 ‘권고’를 채택하기 위해 논의했으며, 차기 총회에서 권고 채택을 목표로 그 얼개를 마련하는 논의를 진행했다. 고용위원회는 2008년 총회가 채택한 ‘공정한 세계화를 위한 사회 정의에 관한 ILO 선언’에 따라 각국 정책을 분야별로 점검하는 논의를 담당했는데, 올해는 각국의 고용정책을 검토했다. 
 
 
 
노동자그룹, “국제기준 무시하는 한국 정부 지속적 감시 필요” 
기준적용위원회는 ILO가 각국이 비준한 협약을 잘 이행하는지 감시감독하는 기구 중 하나로, 매년 25개 사례를 선정하여 심의하고 노사정 3자의 입장으로 결론을 도출한다. 25개 사례는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수록된 여러 사례 중 협약 위반의 정도가 중대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들에 대해 협약의 종류와 지역의 균형을 고려하여 노동자그룹과 사용자그룹의 합의를 통해 선정된다. 
한국 111호 협약 이행 여부가 기준적용위원회의 심의대상으로 오른 것은 2009년, 2013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다. 2009년, 2013년에서 기준적용위원회는 비정규직법 도입에 따라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확대되었는지, 비정규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없는지,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없는지 등을 주로 심의했다. 
심의 결과 기준적용위원회는 몇 가지 법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비정규직법상 차별시정제도에서 개별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조합도 제소의 주체가 되도록 법을 개정할 것,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이주노동자들을 차별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할 것, △정치적 견해에 따른 유치원 및 초중등 교원에 대한 차별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나아가 정치적 의사표현 제한을 특정 직업에 내재하는 조건으로 여기는 것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된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므로 정부가 이와 같은 (개선된)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올해 총회에서 심의될 사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그룹은 “지난해 기준적용위원회가 한국 사례를 심의하고 내린 결론을 한국 정부가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심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한국을 심의 대상의 우선 순위에 올렸다. 보통 25개 사례를 선정하기 전 노동자그룹은 사용자그룹과의 협상에 제출할 사례 목록을 자체적으로 만든다. 노동자그룹이 한국을 우선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한국정부가 ILO에 가입하면서 스스로 내건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내린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법‧제도 개선 권고 역시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ILO는 2013년 한 해 동안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도 민영화 반대파업 탄압 등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으로 총 네 차례나 한국에 긴급 개입했다. 노동자그룹은 이렇듯 국제기준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무시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ILO 감시감독 메커니즘을 지속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준적용위원회, “한국 정부 111호 불이행 여전”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는 6월3일~4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국 정부는 기준적용위원회의 이전 권고를 어떻게 이행했는가 보다는 차별해소를 위해 정부가 새롭게 도입한 제도를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 예로 △기간제법․파견법을 2013년 3월과 2014년 4월 두 차례 개정하여 기간제노동자와 파견노동자 차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였고,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위한 여성고용 기준을 현행 동종업종 평균의 60% 미달에서 70% 미달로 높였으며, △일과 가정 양립 지원을 위해 여성에 대해 선택적 시간근로제를 도입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보고에 대해 노동자그룹뿐만 아니라 사용자그룹도 “문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용자그룹 대변인은 특히 공무원‧교사 정치활동 금지에 대해 △정치적 중립 의무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고, △업무활동 외에도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차별이며, 교사 공무원이 업무 외의 일상에서 시민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정치적 권리로부터 배제되어서는 안된다며 공무원‧교사를 정치적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주목을 끌었다. 노동자그룹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언급한 2014년 3월 헌법재판소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한 근거가 111호 협약에 어긋나며, 나아가 그러한 잘못된 법에 따라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보편적인 기본권 침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차별에 대해서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극히 제한적이며, 특히 3회 횟수제한 적용을 받지 않으려면 노동자의 귀책이 아닌 사유를 이주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기에 사업장 이동 자유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고용센터가 차별을 판별할 ‘객관적으로 인정된’ 기준도 부재하다고 했다. 
 
한국 정부 규탄하는 노동자위원 발언 이어져 
필자는 민주노총을 대표해 정부의 협약 불이행이 오히려 심각해졌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된 사안들에 더하여 최근 기업들이 노동법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확대한 결과 차별이 심화되었다. 특히 산재사망사고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점을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상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산업안전법 29조에 따라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안전장비 지급에서부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산재 조사기구에 참여할 수 없는 등 노동안전보건 기준이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따라 올해 4월과 5월 두 달 동안 현대중공업에서 8건의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자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는 점을 실례로 들었다. 이주노동자 차별에 대해서는 고용허가제 하에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에 유연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퇴직금을 출국 후 14일 이내에 수령하도록 하는 차별적 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는 점을 차별 확대의 사례로 들었다.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여 차별시정제도를 개선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여 차별을 진정할 수 없어 실효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제교원노련(EI), 국제공공노련(PSI), 네팔노총(GeFONTO)도 심의에 참여했다. 국제공공노련은 여성이 주를 이루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지적했다. 한국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2014년까지 공무원 충원 수요 인원의 3%까지 시간선택제로 고용한다며 불안정 일자리를 확산하고 있다는 점과 2년 이상 일한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으나, 임금 등 차별이 여전하고 고용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네팔 노동자위원은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 농업노동자 근기법 적용 예외조항 남용에 따른 농업 이주노동자 차별, 산업인력공단의 미등록 이주자 명단 공개 등을 지적했다. 특이한 점은 사용자그룹이나 정부그룹에서는 발언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은 없었다.
 
한국 정부가 안게 된 과제
심의를 마무리하면서 노동자그룹 대변인은 ①교사들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을 복직시키며 해고자와 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할 것, ②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부활하고,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 ③이주노동자들이 차별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이주노동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이 온전히 집행되며, 차별에 대해 신속한 진정 절차와 효과적인 분쟁해결 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④근로기준법이 농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고용허가제를 통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할 것, ⑤기간제‧시간제‧하청‧파견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고용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정규직화할 것, ⑥ILO 감시감독 메커니즘을 통해 한국 정부에 내려진 권고를 이행할 수 있도록 ILO가 파견하는 조사단(Direct Contract Mission)을 수용하고 필요 시 기술지원을 받을 것을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사항으로 제시했다. 사용자그룹 대변인 역시 한국 정부의 협약 이행에 여전히 문제점이 남아 있다면서, 조사단 파견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에 한국 정부가 전문가위원회의 지적 사항을 고려하여 자체적인 노력과 ILO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111호 불이행 건은 심의과정에서 노동자그룹과 사용자그룹의 의사 결정에 따라 결론이 내려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례 심의에서 노동자그룹과 사용자그룹 간 이견이 발생하여 각 사례에 관한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합의로 채택하는 것은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협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주장은 노사 대표들의 발언을 통해 반박됨에 따라 한국 정부는 회원국으로서 제시된 권고사항들을 수용해 법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안게 됐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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