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해법, 왜 민영화가 아닌 공공성인가

노동사회

경제위기 해법, 왜 민영화가 아닌 공공성인가

구도희 0 4,732 2013.09.04 02:51
학자들이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참혹한 기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부른 최근의 경제위기는 이제 명백하게 장기침체(Long Recession)가 되었다. 미국의 위기나 유럽의 위기는 모두 한 쪽 나라들은 부채로 소비를 촉진하고, 다른 쪽 나라들(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럽의 독일 등)은 수출로 그 수요를 메꾼 결과였다. 이로 인한 세계적 거대 불균형, 그리고 EU 내의 불균형을 금융으로 메꿀 수 있다는 어이없는 믿음은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선진 경제가 동시에 침체에 빠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한국 등 동아시아도 이제 더 이상 수출에 의존해서 성장할 수 없다. 
거대 불균형의 당사자이기도 한 ‘G2’(미국과 중국)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위해 힘을 겨루고 있고, 한반도는 그 한 가운데 있다. 지난 300여 년의 유례없는 성장은 에너지의 고갈과 이산화탄소의 범람을 초래했다. 학자들이 현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 네덜란드 학자 크뤼천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로 명명한 건 자못 의미심장하다. 현재의 격랑은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위기의 시대, 민영화라는 구시대의 망령
구체제와 새로운 삶의 체제가 격렬하게 맞부딪히고 있다. 생태는 물론 경제와 정치, 그 어느 곳에서도 구체제는 한결같다. 만일 지금 우리의 삶 자체를 환골탈태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구체제의 사상적 기초는 시장이 모든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시장만능론, 또는 시장근본주의(=신자유주의)이다. 시장근본주의는 IMF-미재무성-월스트리트 3각 동맹이 정식화한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즉 민영화와 규제완화, 감세, 고금리에 의한 구조조정은 각국의 지배동맹(한국의 경우에는 재벌-고위관료-조중동의 3각 동맹)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 의해 강요되었다. 
한국에 이런 사상이 들어온 것은 1980년대였지만 그것을 추진할 지배동맹이 완성된 것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였다. 과거 국가 우위의 발전국가는 이제 재벌 우위의 시장국가로 재편되었다. 이들이 야심차게 추진한 국정기조가 ‘금융자유화’와 바로 그 뒤를 이은 ‘세계화’였고, 정권이 강하고 신속하게 밀어붙인 만큼 그 결과도 즉각 나타났다. 바로 1997년의 외환위기였다. 그 덕에 최초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IMF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미 시장만능론으로 무장한 경제관료들은 위기 상황을 신자유주의 개혁의 기회로 활용했다. 민주정부는 민영화로부터 한미FTA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시장만능주의를 실천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담배인삼전매공사, 포항제철, 한국통신 등이 KT&G, 포스코, KT로 민영화되었고, 한국전력도 발전부문이 6개의 자회사로 분할·민영화되었다. 송배전 부문, 철도, 가스의 민영화 계획도 수립했지만, 이 계획은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일단 중지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때도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는 수도의 민영화는 속속 진행되었다. 
참여정부는 2006년 2월 한미FTA 협상을 개시해서 2007년 7월 협정을 체결했고, 국회는 2011년 한미FTA 협정을 비준했다. 특히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의 협정 내용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드는 독소조항을 품고 있었다. 현재유보에 포함된 서비스는 공공성을 강화하지 못하며, 한번 규제를 완화하거나 민영화하면 래칫 조항에 의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의료처럼 미래유보에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민영화하고 여기에 외국 자본이 참여하는 경우 투자자 국가제소권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되돌아갈 수 없다. 즉 한미FTA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영구화하는 장치를 안고 있다. 이미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파산했지만 시장만능론이라는 구체제의 유산은 경제학계에서 그리고 정책을 만드는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그 무엇보다도 재벌들에 의해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한미FTA는 구체제의 망령이 현재를 지배하도록 만드는 반영구적 장치이다. 
참여정부 이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미국을 방문하여 한미FTA의 조속한 비준을 위해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완전히 개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는 2008년 내내 촛불시위를 불러 일으켰다.  그 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과 같은 단기 경기부양책에 몰두했고, 다행히 민영화 같이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중장기 정책은 뒤로 미뤄졌다. 
 
부족한 세수 채울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전략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당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법질서는 세운다)라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내세웠다. 2012년 대선에서는 국민의 요구에 밀려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취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는 역시 줄푸세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이래 한국의 경제 정책기조는 수출과 낙수효과였다. 하지만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수출 증가에 따라 대기업의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메커니즘은 멈춰 섰고, 낙수효과는 1990년대 중반 이래 작용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경제성장률은 2%대에 머물고 있다. 이제 내수가 성장을 끌어가야 하는데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일반 국민들이 소비를 늘릴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투자를 늘리려면 대기업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 바로 ‘수도권 규제완화’다. 
하지만 금년에 발표된 모든 통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보여 준다. 최근의 동향을 잠깐 살펴보자([표1]참조). 수출 증가율은 작년부터 금년까지 마이너스에서 1%대를 오가고 있으며, 전년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두 자릿수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재벌들이 숙원을 풀고 수도권의 땅을 사들인다고 해서 당장 설비투자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금년 들어 소비 증가율 역시 ‘0’을 중심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당연히 세수는 줄어들었다.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맞춤형 복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27조 원가량이 더 필요한데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재정지출 낭비 요인을 줄이거나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건 별 효과가 없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복지를 늘리기는커녕 2%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첫째, 부동산 붐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동산 거품은 건설사를 살리는 일인 동시에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묘수로 보일 것이다. 이름에서마저 박정희 시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2단계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4대 중점 추진과제로 △현장 대기 프로젝트 가동 지원, △융복합 촉진, △입지규제의 획기적 개선, △혁신도시 개발 촉진을 들었는데, 이 중 창조경제와 직결된 융복합 촉진을 빼고는 모두 부동산 규제를 푸는 게 핵심이다. 뿐만 아니라 국토부 장관은 주택공급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전월세 폭등이 문제가 되자 금융위원회는 전월세 대출을 늘리겠다고 나섰다. 이 모두 부동산 가격 상승을 노리는 정책들이다. 
또 하나는 민영화다. 재벌들의 또 다른 숙원일 뿐 아니라 정부의 곳간을 일거에 채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즉 정부는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이용해야 할 자연과 공공재를 팔아서 재정을 확충하고 성장률을 끌어 올리려 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이라는 면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데 반해, 공공성의 파괴라는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더구나 한미FTA가 발효되어 있으므로 파괴된 공공성은 다시 복원하기도 어렵다. 
 
공공성 강화에 역행하는 정부의 의료민영화
홍준표 경남지사는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다. 이유는 강성노조 때문에 의료원이 “돈 먹는 하마”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민영화하면 이런 비효율성은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부문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은 애로우(Kenneth Arrow)의 고전적 논문, 「불확실성과 의료의 후생경제학」이래 경제학자들의 상식이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실패가 모두 관찰될 뿐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넘실대는 곳이 바로 의료부문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엔 만리장성과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고, 민간의료보험회사와 대형병원은 ‘단물 빨아먹기(cream skimming)’로 돈을 벌 수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 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경우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MRI를 찍어야 하고 3일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누가 거부할 수 있는가? 또한 치료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병원비를 미리 알 수 없으니 값싼 진료를 선택할 방법도 없다. 
반면 병원은 건강보험 비급여 부분(MRI나 초음파 촬영, 고급 병실처럼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 부분)을 늘려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민간병원이 일반 병실의 장기 입원 환자를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료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면허제도는 의사의 공급을 제한하고,  대형병원은 각 지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이 역시 의료비 증가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또한 전염병의 예방이나 위생관리는 그 자체로 외부성이 강한 공공재이므로 시장이 공급할 수 없다.
이런 시장실패는 공공의료기관이 존재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이다. 더구나 시장이 훌륭하게 성공한다 해도 시장은 돈 없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예컨대 필수약품의 시장, 식량시장은 시장실패의 사례가 아니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에이즈 환자들은 약품을 살 돈이 없어서 죽어가고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시장의 근본적 한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장 이전에 사회적 권리로서 충족시켜야 할 필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필요를 정의해야 한다. 존 롤즈(John Rawls)가 ‘기본재’라고 부른 것,  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이 ‘필수능력’이라고 부른 것, 그것이 바로 ‘공공성’이다. 공공성의 외연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사뭇 다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지금 정치적으로 합의해야 할 일인 것이다. 예컨대 ‘돈 없어서 굶어 죽으면 안 되고, 돈 없어서 치료를 못하면 안 된다’는 합의는 시장보다 훨씬 앞선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시기에 의료 공공성의 강화를 약속했다. 대표적인 공약이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때 이미 3대 비급여(특진료, 상급병실료, 간병서비스료)를 제외시켰다. 한국에서 의료 공공성의 강화는 건강보험 보장율 제고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비결은 비급여를 줄이는 데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율을 2016년까지 사실상 0.9%만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성 강화는커녕 본격적인 의료민영화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실상 영리병원으로 나아갈 메디텔(의료호텔) 법을 통과시켰고,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광’이라는 미명으로 보험사가 환자유인·알선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노후대비용 실손의료보험을 사전에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 출시를 허용할 예정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인 투자개방형병원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니, 전 부처가 나서서 의료민영화에 매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과 국토부 퇴직 공무원만 배불릴 철도 민영화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26일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 출자회사에서 운영하되, 철도공사는 30%의 지분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연기금 등 공공자금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2017년까지 개통할 신규 노선과 적자노선에는 새로운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2012년 한바탕 논란이 있었던 지라 정부는 “공공자금 지분에 대해서는 민간매각이 되지 않도록…… 정관이나 주주협약 등에서 안전장치를 둘 예정”(여형구 국토부차관)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 말을 100% 존중한다 해도 앞으로 대주주인 연기금이 어떤 이유로든 정관을 개정해서 민간매각을 하겠다면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과반수를 국토부가 장악하겠다는 이야기일까? 결국 이번 방안은 황금알을 낳는 흑자노선(철도공사의 노선 중 KTX만 흑자가 난다)과 지방의 적자노선을 모두 민영화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지난 30년 시장 만능주의가 판을 치기 전의 경제학 교과서에는 철도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돼 있었다. 이를 뒤집어 철도 민영화를 행했던 나라들의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다. 정부가 규제하는 기본요금 외의 이용료가 폭등했고, 돈 안 되는 지방노선이 없어졌으며, 심지어 철도사고까지 빈번해졌다. 정부는 왜 소음이 돼 버린 철 지난 유행가를 트는 것일까?
정부 말대로 철도공사(코레일)가 적자투성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적자노선에 대한 교차보조(시골에도 기차가 하루 한 번은 다녀야 할 것 아닌가?), △노선 건설비용의 부담, △낮은 요금 때문이다. 말 그대로 네트워크산업의 공공성 때문에 생긴 적자일 뿐이다. 만일 이 적자가 국토부의 주장대로 공사 운영의 비효율성 때문이라면, 그건 전적으로 국토부의 책임이 아닌가? 
이런 공공성 비용을 치르지 않는 민간 자회사는 흑자를 볼 수 있고, 정부 주장대로 수서발 KTX 기본요금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엉터리 예측으로 악명 높은 교통연구원의 발표대로 20%나 내려가진 않을 것이고, 초호화 노선을 만드는 등 부가요금을 올릴 테지만). 그렇다고 서울발 KTX 기본요금을 경쟁적으로 따라 내린다면 철도공사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 다시 민영화 확대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도대체 대기업의 횡재와 국토부 퇴직 공무원들의 일자리 외에 철도 민영화에 어떤 이익이 있다는 건가? 
민영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겠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다. 여기에는 가입자가 과반수 참석한다. 즉 정부가 수서역발 KTX 운영회사 설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기금의 동의 없이 지분 70%를 배정하는 건 심각한 월권이다.  
더구나 한미FTA가 발효돼 있다. 국민연금이 참여하는 자회사에 외국자본 유입을 막을 수 없다.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70% 지분 중 일부를 미국인 투자자가 사들인다면, 그때부터 투자자국가제소가 가능해진다.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이 엉터리 정책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협동이 답이다
이 글에서는 민영화 추진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의료와 철도 부분만 다뤘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시절, 그러니까 15년 전부터 계획되었던 각종 네트워크 산업(철도, 전기, 가스, 수도, 우편, 공항)의 민영화 역시 본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0여 년간 세계 각국 정부는 비효율의 제거와 서비스의 질 향상, 재정 확충을 이유로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공공요금은 폭등했고 도서산간에 대한 서비스가 끊어지는 등 서비스의 양극화가 나타났으며, 심지어 대형 사고도 빈발했다. 이는 네트워크 산업이나 필수재로서의 의료나 교육 분야를 민영화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복지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직접적으로는 정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민영화가 아예 시작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해 반감을 가진다거나, 서비스에 불만을 지닌다면 민영화 반대 운동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공공성은 ‘공공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확정된다. 따라서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왜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필수적인지 알려야 한다. 그것은 서비스 자체에 내재된 속성(필수재인가, 가치재인가 등), 산업과 소비의 특성(공공재 또는 공유자원, 또는 네트워크산업), 관계재로서의 특성 등 여러 차원에서 정의될 수 있다. 특정 부문의 공공성은 이렇게 여러 차원의 이야기가 종합되어야 구체적인 모습을 띄게 된다. 그래야 공공성 강화의 방향도 확실해질 것이다(정태인·이수연,『협동의 경제학』 제4부 참조).
한편 공공재나 공유자원은 사회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본다면, 그런 재화나 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할 수도 없고 또 정부의 민영화 시도를 막기도 어렵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나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 그런 수고를 해주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급(또는 공공성 강화)과 공공성 수호, 모두 무임승차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국민들이 동시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능력에 따라 비용을 분담하는 수밖에 없다. 즉 ‘협동’이 답이다. 
왜 이 서비스의 공공성을 지키고 강화해야 하는지, 민영화에 의해 공공성이 파괴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알려야 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협동은 일부 집단의 희생에 의해 촉발된다. 특히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은 소비자들의 불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 노동조합이 주도했던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운동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민영화가 진행되면, 한미FTA를 폐기하지 않고는 되돌릴 길이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전국의 광장은 이런 문제를 토론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일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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