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출범과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

노동사회

박근혜 정권 출범과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

이주환 0 5,378 2013.08.20 10:13

1. 박근혜 정권의 등장과 비정규직의 현실

2월25일 박근혜 정권이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통해 부강하고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식 직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해,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 달라”는 한 집배원의 희망 메시지를 읽고,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의 민생파탄으로 인해 여소야대와 정권교체가 확실했던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는 민생과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워 판을 뒤엎었다. 박근혜는 “사회양극화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라며,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대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유도를 약속했고, △사내하도급 보호법 제정 △비정규직 사회보험 지원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 등을 공약했다. 

 

 

슬그머니 사라진 비정규직 공약들
그러나 지난 2월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국정과제에 박근혜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사라지고, 비정규직 공약도 대폭 축소됐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소득분배 조정분을 반영하겠다던 최저임금 인상 기준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기준 마련”으로 말이 바뀌었고, 최저임금 위반 사용자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도도 사라졌다. 특별근로감독으로 불법파견 확인 시 직접고용 행정명령을 내리겠다는 공약도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는 내용으로 축소됐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고용보험 설계 적용 등의 공약도 사라졌다. 
지난 2월20일 경총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노사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불법적인 관행은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노사관계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앞으로 경총과 한국노총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 현대차 비정규직, 재능교육, 유성기업 등 목숨을 걸고 100일이 넘도록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모두 민주노총 소속인데 이들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물 만난 재벌들의 거센 규제 완화 요구
2013년 1월 통계청 조사 결과, 비경제활동인구는 1,697만 5천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고용률은 63.0%로 유럽은 물론 세계 최저 수준인 미국(66.5%), 일본(66.5%)보다 현저히 낮다. 실업자는 84만 7천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구직단념자 212만 명 등 사실상의 실업자가 400만 명에 이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12년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847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7.8%다.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 하청업체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을 포함하면 900만 명을 넘어선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다.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은 비정규직노동자의 3분의 1 정도만이 가입되어 있는 실정이다. 근속년수는 2.24년으로 8.17년인 정규직의 4분의 1 수준이고, 노조가입률은 2.1%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가 비정규직의 확산과 차별이라는 것이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총선이 끝난 2012년 5월24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의 인사노무 부서장 302명을 대상으로 ‘19대 국회 노동입법 방향에 대한 기업의견’ 을 조사했다. 19대 국회가 고용활성화를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노동정책으로 대기업은 무려 42.6%가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를 꼽았고, “인건비 지원 확대”(22.3%)와 “정규직 보호 완화”(17.0%)가 그 뒤를 이었다. 
지금까지 재벌들은 정리해고의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경영상의 필요”로 바꿔 해고의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콜텍의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이, 이미 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광범위하게 해석해, 다가오는 위기에 대비하는 정리해고까지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만든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으로 2년 이내에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미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이르러 경제위기가 올 때 언제든 비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게 되어 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몰아닥쳐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자, 현대자동차와 한국지엠에서 1년 사이에 사내하청노동자를 1천 명 이상 해고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는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이로 인한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정규직화투쟁에서 보듯,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는 재벌 마음대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파견법의 한계로 인해 재벌들이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한다!”(대량해고와 외주화도 한다)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기간제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외주화, 일부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량해고는 시작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월25일부터 한 달간 전국 초중고 1만 1천여 개를 대상으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6,475명이 해고됐음이 확인됐다. 
이들 중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 대상자인 상시·지속적 업무자는 5,128명으로 92.6%에 달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해고된 노동자 중에서 정부가 정규직이라고 주장해왔던 무기계약직이 1,118명(17.3%)이나 됐다는 것이다. 무기계약직이 “무기한 계약직”이나 “중규직”도 아닌 “짝퉁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정부 조사결과에서 확인된 것이다.
직종별 해고자를 보면 조리원, 특수교육보조, 초등돌봄강사, 사서보조, 전문상담원 등이 다수였는데, 이번 조사에서 빠진 영어회화 전문강사, 스포츠교사, 학습보조교사 등의 인원을 합산하면 해고자가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 추산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22만 1,378명이다. 교육기관이 9만 4,161명으로 가장 많고,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중앙행정기관 순이다. 이 중 정부는 일시·간헐적 업무 등 무기계약직 전환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를 15만 7,643명으로 분류했다. 짝퉁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조차 전환될 수 없는 비정규직이 71.2%에 이른다는 것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대량해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산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숫자 22만 명에는 사내하청노동자를 비롯한 간접고용노동자는 아예 포함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공약은 사실상 15만 8천 명에 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내하도급 법제도로 보호한다!”(사내하청 자본 마음대로 쓰게 한다)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사내하도급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제2장 사내하도급계약의 내용에 나와 있는 △사내하도급 근로 △업무내용 △장소 △인건비 △근로시간 △휴일휴가 △연장야간휴일근무 등 8개 항목은, 대법원이 판결에서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이러한 사항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내용이다. 즉, 이 법이 통과될 경우 현대자동차와 120개 사내하청업체들이 맺은 도급계약서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고,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지시·감독을 해도 불법 근로자파견이 아니라 합법 사내하도급이 된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이 법안을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부르고, 노동변호사들은 이 법안을 “현대자동차 청부 법안”이라고 부른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다투는 법정에서 현대차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이 불법파견이 아니라 합법 사내하도급이라고 주장했던 내용들을 모두 법안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대해 “식물 인권위”로 불리는 국가인권위원회조차 “불법적 비정규직을 양산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지난 2월20일 경총을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에게 이희범 경총 회장은 “고용경직성이 강하다. 이 점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고려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박 당선인은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고용경직성에 대해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의 입장을 고려해서 해법을 찾자”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고려해 만드는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에는 사내하도급법이 근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2. 비정규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운동의 과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에는 대법원 판결 당사자인 최병승 조합원과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장이 13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최장기 투쟁 기록인 1,895일을 성당 종탑에 매달려 농성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내하청노동자와 특수고용직노동자를 대표하는 투쟁이 울산과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의 여론도 우호적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2월1일부터 3일까지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5%가 현대차 비정규직 전원을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현대자동차가 즉각 이행해야 한다는 것에도 87.1%가 찬성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기간제노동자 1,369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고, 올해 6월부터 단계적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6,231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민간위탁으로 외주화된 1만 3천여 명의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시도와 구청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확산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맞선 긴급행동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박근혜 정권의 공약이 비정규직 대량해고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 맞서,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정부가 6월까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벌였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직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를 제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은 언제 어떻게 해고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 추산으로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22만 1,378명 중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조차 되지 않는 15만 8천 명이 3년 이내에 해고될 예정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해고를 막아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력과 예산을 배치하고 특별기구를 구성해, 공공부문 해고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고 신고센터 운영, 법률적 지원방안 마련, 대대적인 노조 가입 등의 방안을 마련하고, 지역에서는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교섭과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짝퉁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이 아니라, 진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기구를 구성해 함께 싸워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투쟁 승리로 기세 만들어야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당사자들의 정규직화를 넘어, 한국사회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핵심인 사내하청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싸움이다. 
2010년 노동부가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사내하청노동자는 32만 6천 명으로 24.6%였다. 더욱 광범위하게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있는 300인 이하 사업장을 포함하면 사내하청노동자는 최소 100만 명 이상이다. 
현대모비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동희오토, STX중공업, 현대위아 등 생산공정을 모두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들로 채운 ‘비정규직 공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으며, 사내하청의 비율이 85%가 넘는 인천공항 등 사내하청은 제조업을 넘어 공공, 서비스 등 전 산업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이 성과 있게 타결된다면, 전체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게 된다. 기아차, 한국지엠 등 자동차는 물론 생산공정의 50~80%를 사내하청으로 채우고 있는 조선소, 정규직화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인천공항 사내하청 등 곳곳에서 투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라는 자동 흐름 방식의 자동차 조립 생산에서는 합법적인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을 은폐하는 신규채용의 벽을 넘어, 현대차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국적인 연대 전선이 절실하다. 

핵심사업이 돼야 할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금속노조는 2013년 임금단체협상 요구안에 생산공정 및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안은 2005년 중앙교섭에서 “불법파견 확인 시 정규직화” 합의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과 있는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현대, 기아 등 기업별 교섭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사내 생산공정 및 상시업무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하고, 직접고용, 정규직을 사용한다. 기존 생산공정 및 상시업무에 사용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2013년 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올해 중앙교섭 요구안 역시, 몇 년째 똑같은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에 걸맞은 투쟁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우호적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주요 사업장에서 공세적으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사내하청 사용금지를 걸고 임단협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전국적인 공동요구와 공동전선을 통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싸워야 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둔갑해 올해 통과가 예상되는 사내하도급법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산별연맹, 주요 노조 대표자들이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에 임해야 한다. 2006년 비정규직법을 막지 못한 후과가 900만 비정규직과 대량해고로 나타났다는 것을 되새기고, 현장조합원들에 대한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위하여! 
무엇보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노동운동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일이다. 희망 한 자락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신의 몸을 던져 하늘로 오르고 있는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주요 대기업노조들은 연대와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법의 한계를 넘어 투쟁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해왔고 사업장을 넘어 연대를 실천해왔던 민주노조의 정신은 사라지고, 멀쩡한 대법원 판결조차도 관철시키지 못하는 지경으로 전락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가 해고자 복직요구와 신분보장에서조차 제외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으나, 반성과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 대기업노조는 대중영합주의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우리 노동운동이 다시 시작해야 할 곳은 온 몸을 던져 하늘에 올라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 바로 철탑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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