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퇴직연금, 자본에 맞설 수 있는 335조가 우리에게 있다-(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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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퇴직연금, 자본에 맞설 수 있는 335조가 우리에게 있다-(김경수)

윤효원 1,105 03.14 22:28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을 깨우자! 

자본에 맞설 수 있는 335조가 우리에게 있다



김경수(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선전홍보국장)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35.9조원으로 2021년 대비 13.6%(40.3조원) 증가했다. 그리고 2032년에는 860조원으로 약 2.5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퇴직연기금은 2022년 9월부터 가입을 시작해 16개월간 1만5천여 개 사업장, 7만7천여 명의 노동자가 가입했으며 2024년 1월 기준 5천억 원의 적립금이 조성되었으나, 수익률은 2022년 2.4%에 불과한 실정이다. 


엄청난 규모로 조성된 퇴직연금의 2021년 수익률은 2.05%로 국민연금 수익률 10.77%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낮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에 대한 운용을 개별 금융기관에 일임해 높은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서 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작년 7월 12일부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의무적으로 도입되면서 금융사들의 경쟁 역시 격화되고 있다. 

 

퇴직연금, 광범위한 사각지대  


이렇게 퇴직연금의 규모가 커져가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관심이 없다. 노동조합은 매년 임단협 투쟁에는 열심이지만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할 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퇴직연금은 누구의 돈인가? 당연히 노동자들의 이연(異延)된 임금이다. 나중에 당연히 받을 돈인데 정작 노동자들은 관심이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극도로 낮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낮은 이유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고용주가 1년 이상 근속하는 노동자에게만 퇴직금 혹은 퇴직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단시간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대상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의 고용도 불안정하고 미래의 노후도 준비할 수 없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퇴직연금을 받는 구조도 특이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퇴직할 때 대체로 연금이 아닌 계좌기준으로 95% 이상을 일시금으로 수령한다. 노후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퇴직연금이 있으나마나 한 실정이다. 

 

연평균 수익률, 퇴직연금 2% vs 국민연금 10%


퇴직연금에는 국민연금과 달리 보험료 부과 소득 상한이 없다. 국민연금은 9% 보험료가 부과되는 반면, 퇴직연금은 8.33%의 보험료가 부과된다. 국민연금 직장가입자는 사업주 4.5%, 노동자 4.5%를 분담한다. 


퇴직연금은 오롯이 노동자가 받을 퇴직금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국민연금보다 퇴직연금에 훨씬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국민연금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2021년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가 되지 않는 반면,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10%다.  

 

퇴직연금 개혁 방향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퇴직연금 문제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첫째, 퇴직연금 가입에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퇴직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모든 노동자가 퇴직금이 아닌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물론, 영세 기업의 경우 부담이 클 수 있다. 이 경우 한 번에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계별로 시기를 나누어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하면 된다. 또한 퇴직연금 수급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만 받도록 해서 노후소득을 보장토록 해야 한다. 


둘째, 퇴직연금 준공영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금융회사가 기업과 퇴직연금 업무에 관한 계약을 맺고 연금자산을 운용·관리하는 계약형(신탁형)만 존재한다. 그러나 산업·업종 혹은 총연맹 차원에서 퇴직연금기금을 설립하고 국민연금처럼 일임형(一任形) 관리 및 투자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운용하면 수익률도 국민연금만큼 나오게 되어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조합 총연맹의 영향력 확대


퇴직연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쉽게 말해 ‘돈’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 보아야 한다. 노동조합 내셔널센터인 총연맹의 연간 예산은 최대 수백억 정도다. 그런데 퇴직연금으로 쌓인 335조에 대한 통제권과 영향력이 내셔널센터의 수중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총연맹이 수십 년 째 무수히 외치고 거리투쟁에 나서온 재벌개혁의 현실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테슬라가 스웨덴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거부하면서 그 여파가 북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웨덴 우편노조가 테슬라에 신차 번호판 전달 거부를 선언했고, 노르웨이와 덴마크 노조는 테슬라 신차의 스웨덴 이송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덴마크 최대 연기금의 하나인 ‘펜션 단마크’(PensionDanmark)가 테슬라의 단체협상 거부를 비난하며 주식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돈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자


계약형인 현재의 퇴직연금을 기금형으로 전환해 총연맹에서 관리하는 순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허울뿐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보다 더 강력하게 공공성의 원칙에 입각해 기관투자가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금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에는 자금을 빼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도 제어할 수 있다. 아울러 퇴직하는 조합원들을 묶는 틀로도 조직할 수 있다. 현재 조합원의 미래를 설계하고, 퇴직 조합원의 노조 멤버십을 유지하는 장치로 퇴직연금이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자본'(workers' capital)인 퇴직연금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노동조합 총연맹이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진다. 345조원이면 2024년 우리나라 예산 총지출 656조원의 절반을 넘는데, 몇 년 지나면 국가 예산에 맞먹는 수준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퇴직연금제도 개혁투쟁에 나서야 


운동의 시작은 퇴직연금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노동자들을 모두 퇴직연금기금 가입자로 포함하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꾸는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과 퇴직연금 당연가입을 연동해 투쟁해야 한다. 슬로건으로 제출하자면 “모든 노동자에게 퇴직연금을!”이 되겠다.  


그리고 1년 이상 근속해도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퇴직금과 퇴직연금기금 중에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퇴직연금기금을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퇴직연금기금은 외부로 유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퇴직금을 떼일 염려가 없다.


수익을 목적으로 금융회사들이 운용하는 현재 방식의 퇴직연금은 높은 운용비용과 낮은 수익률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퇴직연금이 실질적인 국민 노후생활 보장재원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개혁방안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이 나서서 퇴직연금을 공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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