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새벽배송’ ILO 야간근로 협약에 해법 있다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일방적으로 (법)제정을 통해 진행하기보단 현재 자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분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급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그런 획일적인 조치는 현재로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대화 제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행복권을 실현하는 핵심 의제인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국가의 의무를 사회적 대화라는 미명하에 노사 당사자에게 떠넘기는 발언이다.
문재인 정권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같은 헌법적 권리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던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와 98호를 국무회의를 열어 비준하지 않고 사회적 대화와 국회 입법에 맡김으로써 4년을 낭비했다. 그 결과 노동개혁 동력은 물론 사회경제개혁 동력까지 상실했고,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 됐다.
대통령선거 때 이재명·김문수 후보 모두 주 4.5일제를 내세웠다. 김문수 공약은 월~목에 하루 9시간 일하고(36시간), 금요일은 4시간만 일해 주 40시간에 변화를 주지 않는 안이었다. 하루 8시간을 9시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이 있어야 하지만, 주당 기준인 40시간은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이재명 안은 월~목에 하루 8시간 일하고(32시간), 금요일은 4시간만 일해 법정 기준을 주 36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근로시간은 날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그 이면에는 ‘반사회적 근로시간(unsocial working time)’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는 장시간·불규칙·야간근로를 말한다(ILO 2007, <괜찮은 근로시간> Decent Working Time, 2007).
ILO는 1919년 채택한 협약 1호에서 ‘일 8시간-주 48시간(공장)’이라는 한도를 제시했다. 1930년 채택한 협약 30호는 이 한도를 상점과 사무실로 확대했다. 1990년에는 171호 야간근로 협약을 채택해 ‘야간근로(night work)’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시간을 포함해, 연속된 7시간 이상의 기간 동안 수행되는 모든 근로를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171호 협약은 △야간노동자의 무상 건강검진권(4조) △야간근로 응급조치 및 치료체계(5조) △건강상 야간근로가 불가능한 경우, 직무 전환 및 동일한 급부를 보장(6조) △임신·출산 전후 여성노동자에 야간근로 대신 주간근로, 사회보장급여, 출산휴가 연장 등 대체수단 보장(8조) △야간근로의 특수성을 반영한 시간·임금·급부 형태의 적절한 보상(9조) △야간노동자를 위한 사회서비스 제공(10조) △노동자 대표와 정기 협의(11조)를 규정한다.
171호 협약과 함께 채택된 ‘야간근로 권고 178호’는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24시간 내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되고 △야간근로 시간은 주간근로보다 짧거나 같고 △근로시간 단축과 유급휴일 확대 혜택을 동일하게 받아야 하고 △위험하거나 부담이 큰 직종에서는 야간연장근로를 금지하고 △두 교대 사이에는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하고 △야간근무 중에는 휴식과 식사 시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고 △금전적 보상은 유급 연차휴가, 유급 공휴일 및 통상적으로 유급으로 처리되는 기타 결근시의 보수 계산에 포함돼야 하며, 또한 사회보장 기여금 및 급부 산정시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178호 권고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부와 기업의 역할로 “야간근로에 관한 통계자료를 개선하고, 특히 교대제 형태로 수행되는 야간근로의 다양한 조직 방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항과, “가능한 야간근로의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과 업무조직상의 혁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ILO는 근로시간과 관련하여 8개 협약을 강조한다. △1호(일 8시간-주 48시간, 공장) △14호 주휴(공장) △30호(일 8시간-주 48시간, 상점·사무실) △106호 주휴(상점·사무실), △132호 유급휴일 △171호 야간근로 △175호 단시간 근로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이 비준한 것은 ‘주40시간 협약 47호’뿐이다.
새벽배송은 야간근로의 문제이며, 근로시간의 문제다. 단순한 산업 트렌드가 아니라, 노동시장 중하층 노동자들의 수면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문제다. 국제사회 노사정의 타협의 산물인 ILO 협약 171호 및 권고 178호는 새벽배송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 대선의 주 4.5일제 공약은 근로시간 문제의 본질에 자리한 야간근로·연장근로·불규칙근로·교대제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 없이 제기됐다. ILO 협약에 대한 이재명 정권의 관심을 촉구한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11월호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 2025년 11월 3일 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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